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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EPOCH] “중국 감옥·병원서 산 채로 장기적출”

 

 

 

 

 

[EPOCH] “중국 감옥·병원서 산 채로 장기적출”

 

 

 

 

 

 

일반시민, 군의관 등 다양한 증언 나와

 

생체 장기적출 범죄를 밝혀내는 데 증인을 찾기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피해자는 장기가 적출당한 후 소각돼 증거가 인멸되었기에 증언할 수 없고, 가해자 역시 스스로 나서서 폭로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 생체장기적출을 목격한 의사 등이 잇달아  내막을 폭로하고 있다. 다양한 증인들의 증언은 생체 장기적출 범죄의 존재를 방증하고 있다.

 

 

일반인 증언 “노동교화소에서 목격”

 

충칭시민 덩광잉(鄧光英)은 최근 해외언론에 자신이 2011년 충칭 여자 노동교화소(강제 노역시설)에 감금당했던 기간 쉬쩐(徐真·당시 46)이라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가 산채로 장기를 강제적출당해 사망한 사실을 직접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충칭 허촨(合川)전력공사에 재직했던 쉬쩐은 2011년 9월 말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충칭 여자 노동교화소에 불법구금됐으며  연속 10여 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덩광잉은 “그들은 쉬쩐을 붙잡아오더니 전신이 다 부을 정도로 미친 듯이 그녀를 구타했다. 그다음 그녀에게 자발적인 장기기증 신청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고 그녀는 쓰지 않았다. 그녀가 쓰지 않자 발가벗긴 후 작은 도구로 억지로 입을 벌린 후 생수병으로 물 10병을 부어 넣었다”라고 말했다.

 

덩씨는 2011년 길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하다가 도시관리소 직원과 충돌을 빚었다가 파룬궁 수련자 쉬쩐과 같은 노동교화소에 보내졌다.

 

 

중국 충칭시민 덩광잉(鄧光英)은 자신이 2011년 충칭 여자 노동교화소에 감금당했던 기간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쉬쩐(徐真·당시 46)이

산채로 장기를 강제적출당해 사망한 사실을 직접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NTD TV 화면 캡처) 

 

 

2011년 10월 20일 교도관에게 새벽까지 체벌을 당했던 덩씨는 갑자기 노동교화소 건물 4층에서 쉬쩐의 비명을 똑똑히 들었다고 했다.

 

덩씨는 “쉬쩐의 눈이 도려내진 시각은 2011년 10월 20일 새벽 2시 7분이었다. 당시 시계로 확인했다. 그녀의 참혹한 비명이 노동교화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들이 제 눈을 파내고 있다’라는 그녀의 외침이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라고 증언했다.

 

당시 같은 노동교화소에 구금됐던 파룬궁 수련자 후잉(胡英)은 “2시, 3시경이었다. 처참하고 무시무시한 비명이 들렸는데 너무 무서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모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2층에 있었고 쉬쩐은 4층에 있었는데 비명이 들렸지만 뭐라고 외쳤는지는 똑똑히 들을 수 없었다. 덩광잉은 같은 4층에 갇혀 있다 보니 아마 잘 들었던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올해 덩씨가 목격자로 나서 진술함으로써 당시 쉬쩐의 참혹한 죽음이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시사평론가인 헝허(橫河)는 “처음 쉬쩐을 구타한 것은 그녀에게 ‘자발적 장기기증 신청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중공이 말하는 ‘자발적인 장기기증’의 자발이 고문의 결과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쉬쩐의 장기는 어디로 갔나? 시신은 가족에게 넘겨줬나? 가족이 보게 된 시신은 어떤 상태였고 장기가 그 속에 있었는가?”라고 지적했다.

 

본지가 2011년 보도한 쉬쩐의 죽음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노동교화소 측은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고 사망 일주일 후 노동교화소 교도관 위샤오화(喻晓华)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일은 마무리되었고 추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헝허는 “중공의 생체장기적출조사에서 어려운 점은 바로 한 정권이 권력으로 이러한 범죄를 비호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고 지적했다.

 

‘파룬궁박해추적조사국제조직’은 중국에 대한 10년 동안의 체계적인 조사를 거쳐 2천여 편의 전화녹음 파일을 수집하고 1만여 건의 증거자료를 얻어냈다. 이러한 증거는 파룬궁 수련자 대한 생체장기적출이 장쩌민이 지시하고 공산당이 집행한 국가적 범죄이며 그것은 집단학살죄, 반인류죄임을 재차 증명했다. 바이수중(白書忠) 전 중공군 총후근부(병참부) 위생부장과 보시라이 전 상무부장과의 전화통화 녹음파일은 모두 장쩌민이 직접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로 이식수술을 하라고 명령했음을 나타냈다.

 

 

검찰관 “당신 부친 장기 적출해 표본 만들었다”

 

파룬궁 수련자 장시칭(江錫?)은 충칭시 장진(江津)구 지방세무서 간부다. 장시칭은 2008년 5월 14일 납치돼 적법한 절차 없이 노동교화 1년형을 선고받았다. 형기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가족들에게 갑자기 장시칭이 사망했다는 통지가 날아들었다.

 

2009년 1월 28일 오후 10시 지방 당국은 가족들에게 고인의 시신을 보러 장례식장에 오라고 통지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장시칭의 딸 장리(江莉)는 당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던 일을 떠올리며 “냉동실에서 꺼내온 아버지 시신을 만져보니 아직 따뜻했다. 우리 손보다 더 따뜻했다”고 말했다.

 

장씨의 가족들은 모두 장씨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으로 여기고 치료를 요구했지만 건장한 남성들에 의해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이후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추궁하자 2009년 3월 27일 충칭시 검찰원 제1지원의 저우바이린(周柏林) 처장은 “당신들 부친의 내장기관이 모두 적출돼 표본 제작에 사용됐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장리를 비롯해 장씨의 자녀들과 친척 3명이 있었으며 이들은 1시간 59분 분량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이후 장리는 아버지의 장기가 적출됐다고 한 저우바이린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파일을 지니고 해외로 나와 공개했다.

 

 

軍 인턴의사, 적출현장 목격담

 

작년에 캐나다로 이민한 전 선양(瀋陽) 육군총병원 인턴 의사 A씨의 회고는 피로 얼룩진 생체 장기적출의 참혹한 범죄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우리 차 주위에는 온통 기관단총을 든 병사들이 서 있었다. 모두 얼굴은 바깥쪽으로 향하고 우리를 등진 채 서 있었다. 한 의사가 메스를 들더니 가슴뼈 아래를 절개해 배꼽부위까지 크게 갈랐다. (장기를 적출당하던) 그 사람은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목은 이미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다음 의사가 전체 복강을 칼로 갈라 열었다. 피와 창자가 단번에 솟구쳐 나왔다. 한 의사가 창자를 반대쪽으로 밀더니 단번에 한쪽 신장을 적출해냈다. 반대편에 있던 다른 의사는 다른 한쪽 신장 적출을 책임졌다.”

 

“반대편에 있던 의사가 왼쪽 손바닥으로 그 사람의 머리를 단단히 바닥에 누르고, 두 손가락으로는 그 사람의 위 눈까풀을 잡은 채 오른손에 집게를 쥐고 뒤집더니 단번에 안구가 적출됐다.”

 

“의사가 칸막이를 두드려 신호를 주자, 조수석에 앉았던 군인이 무선전화기로 외쳤고 그러자 바로 뒤쪽 차 문으로부터 군인 넷이 들어오더니 2m 길이의 검은색 비닐봉지로 그 사람(피해자) 온몸을 덮어씌웠다. 그 사람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군인들은 그를 주차해 뒀던 씌우개가 씌워져 있는 다른 군용차에 옮겨 실었다.”

 

“우리 차 문은 바로 닫혔고 군 차량 인솔 하에 다시 병원 쪽으로 이동했다. 병원에 돌아온 후 우리는 장기를 수술실에 옮겼다. 수술대에는 다른 한 팀의 의사들이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이식할 수술준비를 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NTD TV 린난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