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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방송/문화] NTDTV 동방신운(東方神韻)- 중국한복 한푸(漢服) 특별기획, 제2부 상의하상(上依下裳) - 당조(唐朝)

 

 

 

[ 당조(唐朝) 염입본(閻立本)의 보련도(步辇圖) ]

 

 

 

 

NTDTV 동방신운(東方神韻)- 중국한복 한푸(漢服) 특별기획, 제2부 상의하상(上依下裳) - 당조(唐朝)

 

 

 

 

 

 

  

- 당(唐) 왕조 시기의 중국 전통복식 문화

 

원문: http://www.ntdtv.com/xtr/gb/2008/04/29/a134217.html

 

 

 

 

 

[사회자 리신(李欣)]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중국 당(唐)나라 시대에 즐겨 입던 복식의 특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조(唐朝 618-907)는 중국 역사상 정치, 경제가 고도로 발전하고 문화예술이 번영하고 창성한, 휘황찬란한 시대였습니다.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은 무덕(武德) 7년인 서기 624년에 유명한 '무덕율(武德律)'을 반포했는데, 이중에는 복장(服裝)에 대한 율령(律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둥근 깃을 가진 옷 원령(圓領)과 복두(幞頭)는 당(唐)나라 남자들의 비교적 전형적인 옷차림이었습니다.


'괵국부인유춘도' 장훤(張萱), 당(唐)

'한희재야연도' 고굉중, 남당(南唐)

'문원도' 한황, 당(唐)



[에이미 리(Amy Lee) 한푸(漢服) 전문가]


당(唐)나라 시기 남자의 가장 전형적인 복장은 둥근 깃의 옷 원령(圓領)과 복두(幞頭)였습니다.


복두(幞頭)란 두건(頭巾)으로 머리를 감싼 후 뒤로 매듭을 지은 것으로, 이렇게 하면 매듭이 자연스레 아래로 흩날리게 되어 마치 두 가닥의 띠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평평한 두건(頭巾)이었다가 점차 이런 건(巾)으로 변했습니다. 머리 윗부분을 딱딱하게 만들었는데 바로 사(紗)로 고정시켰습니다. 윤곽을 만든 후에는 검게 옻칠을 하거나 혹은 다른 색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연악도' 주방(周昉), 당(唐)


당(唐)나라 300년 역사 동안 복장에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대동소이 했습니다. 굳이 그 변화를 살펴보면, 두건(頭巾)이 높거나 낮아졌고 뒷부분의 띠가 곧게 변하거나 혹은 좀 낮아지거나 넓어졌습니다.


장취영이 모사한 『한희재야연도』


당(唐)나라 시대 문무백관(文武百官)들도 모두 이런 옷을 입었으며 단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미세한 변화가 있었을 뿐입니다.



[사회자 리신(李欣)] 


당대(唐代)의 관복(官服)은 고대 심의(深衣)의 전통형식을 발전시킨 것입니다.


옷깃, 소맷부리, 옷자락 가장자리에 덧대고 의복의 앞뒤를 모두 곧게 재단하는데, 허리부위는 혁대(革帶)로 묶었습니다. 옷소매는 직선형과 넓은 형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소매가 넓고 큰 양식을 원령삼(圓領衫)이라고 합니다. 위로는 황제(皇帝)부터 아래로는 하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입을 수 있었습니다. 복두(幞頭), 원령(圓領), 혁대(革帶), 검은 가죽신인 오피화(烏皮靴) 세트는 명대(明代)까지 전해졌습니다.


당(唐)나라 대명궁(大明宮)

역대 제왕상 당태종 이세민(李世民)

 

 

[에이미 리(Amy Lee) 한푸(漢服) 전문가]


후세에 전해진 이 유명한 그림은 당(唐)나라 궁중화가 염립본(閻立本)이 그렸습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온몸에 황포(黃袍)를 입고 있는데, 바로 평상복 황포(黃袍)입니다. 옷에는 또 용의 무늬가 있고 허리는 띠로 묶었으며 검은 복두(幞頭)를 쓰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습니다.


이 그림이 비교적 전형적인 원령삼(圓領衫)과 복두(幞頭)입니다. 원령삼(圓領衫)과 복두(幞頭)는 당시에 남녀 모두 입을 수 있었는데 파란색도 있었고 또 작은 꽃이 있는 것도 있었으며 또 흰색과 붉은 색이 있어서 여자들도 즐겨 입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아주 간편해서 말을 타거나 사냥을 나갈 때는 물론 또 조정에 나갈 때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괵국부인유춘도' 장훤(張萱), 당(唐)



[사회자 리신(李欣)] 


중국 10대 명화 중 하나로 꼽히는 '보련도(步輦圖)'는 당(唐)나라 때 유명한 화가인 염립본(閻立本)이 그린 그림입니다.


정관(貞觀) 14년인 서기 640년, 지금의 티베트인 토번(吐藩)왕 송첸감보(松贊幹布)가 대당(大唐)의 문명을 흠모해 사자인 녹동찬(祿東贊)을 장안으로 파견했습니다. 이듬해 송첸감보(松贊幹布)는 문성(文成)공주와 혼인을 맺습니다.


'보련도(步輦圖)'는 보련(步輦) 위에 앉은 당태종이 토번(吐藩) 사신 녹동찬(祿東贊)을 접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련도(步輦圖)' 염립본(閻立本), 당(唐)



[토니 다이(Tony Dai) 예술 평론가]


이 작품에는 사실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당(唐)나라의 서쪽 지역에 토번(吐藩)이란 나라가 있었습니다. 토번(吐藩)에 아주 위대한 왕이 탄생했는데 송첸감보(松贊幹布)라고 불렸습니다.


송첸감보(松贊幹布)


그런데 송첸감보(松贊幹布)는 당(唐)나라 공주를 아내로 얻고자 했지만 처음에 당태종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송첸감보(松贊幹布)가 무력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송첸감보(松贊幹布)는 만약 당(唐)나라 공주를 아내로 얻으려면 반드시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그는 노련하고 경험 많은 외교관을 파견해 당태종을 예방하게 하고 자신을 대신해 당태종에게 정식으로 구혼하도록 했습니다.


'보련도(步輦圖)' 염립본(閻立本), 당(唐)

송첸감보(松贊幹布)와 문성(文成)공주 


결국 당태종은 문성(文成)공주를 송첸감보(松贊幹布)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송첸감보(松贊幹布)와 당(唐)나라 문성(文成)공주의 혼인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문성(文成)공주가 토번(吐藩)으로 시집가면서 당(唐)나라의 문화를 함께 가져갔기 때문에 당시 토번(吐藩)은 아주 번영하고 흥성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그림이 단순하게 당시 아주 중요했던 한 가지 역사 사실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당시 문화의 아주 전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림에 등장하는 매 한 사람이 입은 옷은 사실 모두 당시의 아주 전형적인 복장(服裝)입니다.


'보련도(步輦圖)' 염립본(閻立本), 당(唐)


예를 들면 당태종이 입은 것은 황제(皇帝)가 평상시 입던 평복이며, 또 시녀들이 입은 긴 옷은 관리들이 입은 관복을 포함해 당(唐)나라 시대 전형적인 복장들의 몇 가지 예입니다. 사실 일부 당(唐)나라 복장은 호복(胡服)의 형식도 참조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당조(唐朝)의 복장은 아주 다양했고 의젓하면서도 화려했습니다.



[사회자 리신(李欣)] 


당(唐)나라 때 사녀(仕女)를 그린 화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장훤(張萱)과 주방(周昉)입니다. 


장훤(張萱)의 '도련도(搗練圖)'는 궁중 부녀자들이 옷감을 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방(周昉)의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는 궁중 생활을 소재로 봄과 여름 사이에 꽃을 감상하며 정원에서 노니는 귀족 부녀자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필치가 순박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기운(氣韻)이 고아(高雅)하고 고귀(高貴)합니다. 그림 속 사녀(仕女)들의 행동은 한가롭고 편안하며 표정은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습니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의 장식은 매우 정교합니다



[에이미 리(Amy Lee) 한푸(漢服) 전문가]


당대(唐代) 여성 옷의 양식에 대해 말하자면 비교적 풍부했는데 아주 풍부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말해 남성은 몇 가지 양식만 있었지만 여성 옷은 다양하고 다채롭습니다.


큰 소매를 지닌 대수삼(大袖衫)은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유명한 그림인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 주방(周昉), 당(唐) 

대수삼(大袖衫) 


귀족 부인들은 안에 비단으로 된 긴 치마를 입었고 밖에는 덧옷인 조삼(罩衫)을 입었습니다. 아울러 이 덧옷은 투명했고 소매가 바닥까지 끌렸는데 아마 너댓 자 정도 될 것입니다.


왕조(王朝)에 따라 유행이 존재하는데 어떤 때는 소매가 좀 큰 것이 유행했고, 때로는 소매가 좀 작은 것이 유행했으며 또 바닥에 끌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바닥에 끌리는 것을 말하자면 1~ 3미터 정도 되는데, 다시 말해 아주 우아하면서도 풍격이 있었습니다.



[토니 다이(Tony Dai) 예술 평론가]


'도련도(搗練圖)'는 당대(唐代)의 유명한 화가 장훤(張萱)이 그린 것으로 사녀(仕女)를 소재로 그린 작품입니다.


'도련도(搗練圖)' 장훤(張萱), 당(唐)


우리는 이 '도련도(搗練圖)'에서 당시 사녀(仕女)들이 입던 긴 치마를 볼 수 있는데, 이 치마는 허리가 아주 높아서 겨드랑이까지 올라갔고 위에는 명주 실로 묶었습니다. 겉에는 또 숄과 유사한 피백(披帛)이란 이런 장식을 걸치고 있습니다. 사실 '도련도(搗練圖)'는 성당(盛唐) 시기의 사녀(仕女)들이 의복을 만드는 이런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연(練)'이란 고대에 실의 일종이었습니다. 이 실은 우리가 지금 보는 실처럼 옷감을 짜서 바로 입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백분을 가한 후, 절굿공이로 찧은 후라야 부드럽게 변하고, 다 찧은 다음에는 또 다리미로 다려야지만 옷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도련도(搗練圖)'는 사실 중국 고대에 옷을 제작하는 전 과정, 실을 찧는 데서부터 재단에 이르기까지 옷을 만드는 전체 과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회자 리신(李欣)] 


당(唐)나라 때 여성 옷의 특징은 치마인 군(裙), 삼(衫), 덧옷인 피(帔)의 통일이었습니다. 당대(唐代) 여성의 옷깃은 둥근 깃, 네모난 깃, 비스듬한 깃, 직선 깃 및 하트모양의 깃 등이 있었습니다.


긴 치마의 특징은 허리가 비교적 높다는 점인데, 보통 허리 위에 묶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겨드랑이 밑에 묶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수려하면서도 가늘고 긴 느낌을 줍니다



[에이미 리(Amy Lee) 한푸(漢服) 전문가]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에서 부채를 든 어린 궁녀가 입은 것은 짧은 저고리인 '유(襦)'와 치마 '군(裙)'인데 일반적으로 평민백성들이나 부녀자들이 비교적 즐겨 입던 옷이 바로 유군(襦裙)입니다.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 주방, 당 


유군(襦裙)에서 유(襦)는 짧은 저고리를 말하는데, 말하자면 상의(上衣)가 짧은 것입니다. 하지만 군(裙)은 높이 올라가 허리가 아주 긴데, 시각적으로 가늘고 긴 느낌을 줍니다.

 

'한희재야연도' 고굉중, 남당 


물론 상의(上衣)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상의에 대해 말하자면 긴 소매를 가진 것도 있습니다. 긴 소매는 보통 소매가 좁은데 소매가 좁은 짧은 상의에 허리가 높이 올라가는 치마를 입으면 몹시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를 입을 때는 보통 조끼 모양의 반비(半臂)를 위에 걸쳤습니다.


유군(襦裙)과 반비(半臂) (당(唐), 영태공주 묘 벽화) 


반비(半臂)는 조끼와 비슷하며 지금은 '조끼'라고 하는데 껴입는 것입니다. 반소매(半袖) 혹은 유견(柳肩)이라고도 하는데 어깨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는 것입니다. 짧은 것은 또 중간에서 매듭을 짓거나 또는 껴입었기 때문에 당시 이런 반비(半臂)는 2개나 3개가 한 세트였으며 또는 겉에 다시 포(袍)를 입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조합은 매우 완벽했습니다



[사회자 리신(李欣)] 


당(唐)나라 시기는 중국 사회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였고 당(唐)의 수도 장안(長安)은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자 동서 문화가 교류되는 중심이었습니다.


당(唐)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은 나라는 일찍이 300개가 넘었으며 찬란한 중국문화는 그들을 통해 세계 각지로 전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동아시아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예전 당(唐)나라 시기의 복식(服飾)을 자기 민족의 정식 예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에이미 리(Amy Lee) 한푸(漢服) 전문가]


방금 전에 원령삼(圓領衫)과 복두(幞頭)를 말했는데, 이외에도 남녀 모두 입을 수 있었던 호복(胡服)이 있습니다.


호복(胡服). 낙타를 탄 사람, 당(唐) 


호복(胡服)이란 당(唐)나라 시기 서역 소수 민족들이 당(唐)과 빈번하게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당(唐)의 문화를 배워가기도 했습니다. 당(唐)은 각 민족 심지어 세계 각 지역과의 교류가 아주 빈번하고 풍부했기 때문에 세계 복장(服裝)에 끼친 영향도 아주 컸습니다.


일본 교토(京都) 

기모노(和服)와 다도(茶道) 


예를 들면 현재 동아시아에는 일본의 기모노(和服)와 한국의 한복(韓服)이 있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많은 것은 당(唐)나라 시대에 배워간 것입니다. 어떤 양식은 직접적으로 당(唐)나라 시대의 양식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이렇게 유지해 온 것입니다. 


우리가 돈황(敦煌)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형상들에도 당시 유행했던 많은 양식들이 남아 있습니다.


돈황(敦煌)



[토니 다이(Tony Dai) 예술 평론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돈황(敦煌)은 사실 중국 고대의 많은 전통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벽화가 매우 두드러집니다. 지금 우리가 늘 볼 수 있는 돈황(敦煌) 벽화 '비천(飛天)'에 나오는 장식은 성당(盛唐)시기 사녀(仕女)의 복장(服裝)과 아주 흡사합니다.


당(唐)나라 사녀(仕女)들이 입던 복장은 천국세계 천인(天人)의 복장(服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녀, 당 


당시 사람들의 도덕이 아주 고상했기 때문에 신(神)은 비로소 이런 복장을 사람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상태이기도 합니다.

 

 

 

기획/헬레나 자오

작가/리씬

음악 예술감독/토니 천

디자인/조안 샤

촬영감독/우난

제작/잭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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